생토메르: 모성과 법정 드라마의 여성 내면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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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프랑스 영화 <생토메르(Saint Omer)>는 겉으로는 법정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한 여성의 모성,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고립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작품입니다. 감독인 앨리스 디오프(Alice Diop)는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여성의 내면과 감정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법정의 진실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는가? 모성은 과연 본능일까, 아니면 사회가 강요한 책임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침묵의 재구성’

<생토메르>는 2016년 프랑스 생토메르 지역에서 실제로 발생한 ‘유기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한 젊은 세네갈 출신 여성이 자신의 15개월 된 딸을 바다에 빠뜨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되는데,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 그 이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감독은 당시 재판을 직접 방청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충격을 바탕으로, 영화 속 주인공 로랑스 콜리의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영화는 범행 자체보다는, 그 여성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내면의 소용돌이와 사회적 고립이 그녀를 그 지점으로 밀어붙였는지를 서서히 드러냅니다. 침착하고 이성적인 피고인의 태도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동시에, 그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모성에 대한 낡은 통념을 깨다

<생토메르>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는 ‘모성’이라는 주제를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영화에서 엄마는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본능적으로 보호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성’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감정이 아님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로랑스는 법정에서 “아이를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그 아이를 없애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모순된 진술은 단순히 ‘거짓말’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출산 이후 사회적 단절과 인종 차별, 가족과의 불화, 그리고 정신적 고립 속에서 무너져간 한 인간의 복잡한 감정 그 자체입니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모성은 과연 본능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가치관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여성의 고립, 법정에서 드러나다

피고인 로랑스는 고학력자이며, 철학을 공부한 지성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연인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아이를 키우는 현실적 도움은 전무하며,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로서 받는 차별은 그녀의 자존감을 계속해서 갉아먹습니다.

법정이라는 공간은 이 모든 고립과 억압이 드러나는 무대가 됩니다. 재판정은 단순히 죄를 가리는 곳이 아니라, 한 여성의 삶을 다시 구성해보는 상징적 공간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영화 속 판사, 변호사, 검사, 방청객까지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은 눈에 띄는 설정입니다. 여성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법이라는 이름으로 내려지는 판단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제기합니다.

듣는다는 것의 의미

영화 속 화자 역할을 하는 라마(카예 기마 수르메라 분)는 작가이자 관찰자로, 재판을 통해 로랑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려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피고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점차 로랑스의 이야기에 동화되며 자신 역시 모성, 정체성,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라마의 존재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얼마나 제대로 듣고 있는가? 감정 없이 판단만 내리는 사회에서, 진짜 공감과 이해는 어떻게 가능할까? 영화는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며, ‘듣는 것’의 윤리와 책임을 일깨웁니다.

마무리하며

<생토메르>는 눈물도 없고, 과장된 음악도 없으며, 드라마틱한 반전도 없습니다. 대신 정적 속에 깊은 파장이 있고, 고요한 장면마다 묵직한 울림이 있습니다. 영화는 범죄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한 여성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삶, 모성,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조용히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 흔들림은, 단지 감상이 아닌 변화로 이어지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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