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멀티버스 속 여성 정체성 탐색

2022년 전 세계 영화계를 강타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단순한 멀티버스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복잡하게 얽힌 우주의 구조 안에서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한 여성의 내면 여행이자, 세대 간 갈등과 자아 정체성을 다룬 가족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극도로 실험적인 연출과 다채로운 장르의 융합 속에서도, 영화의 중심에는 ‘에블린’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혼란, 후회, 두려움, 그리고 사랑이 뚜렷하게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성 정체성의 탐색이라는 주제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평범한 이민자 여성, 에블린의 세계

주인공 에블린(양자경 분)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 여성입니다.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딸과는 정체성 문제로 충돌하고 있으며, 아버지는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금 문제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그녀는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 느낍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렇게 평범하고 무기력한 인물이 ‘우주를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에블린’은 수많은 멀티버스 속 다른 자아들을 마주하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설정은 단지 SF적 장치가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느끼는 ‘잃어버린 가능성’과 ‘후회’라는 감정을 시각화한 장치입니다.

멀티버스는 여성 정체성의 은유다

영화에서 멀티버스는 하나의 우주, 하나의 정체성에 갇혀 있는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인지를 상징합니다. 에블린은 배우, 요리사, 무술 고수, 심지어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존재로도 살아갑니다. 이 다중적인 정체성은 단지 웃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결코 단일하지 않으며, 사회적 역할, 가족적 기대, 문화적 배경 속에서 끊임없이 분열되고 재조합된다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특히 여성은 ‘엄마’, ‘아내’, ‘딸’, ‘사업가’, ‘이민자’ 등 복수의 정체성을 동시에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다층적 여성 정체성을 멀티버스라는 환상적 세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과 감정적 몰입을 끌어냅니다.

딸 조이와의 갈등은 내면의 투쟁이다

에블린과 딸 조이(스테파니 수 분)의 관계는 이 영화의 핵심 감정선입니다. 조이는 동성 연애자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에블린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충돌은 단지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어른의 불안’을 드러냅니다.

멀티버스 속에서 조이는 ‘조부투파 키(Jobu Tupaki)’라는 존재로 등장하며, 무한한 가능성에 무의미함을 느낀 ‘절망 그 자체’로 표현됩니다. 이는 곧,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에 실패한 엄마 에블린의 내면 속 죄책감과 공포를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에블린은 조이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거부해왔던 수많은 세계를 통과하며 진짜 소통의 문을 엽니다.

강함은 연민에서 나온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액션, 코미디, 드라마를 넘나드는 영화이지만, 그 메시지는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 연민이야말로 진짜 힘이다.” 에블린이 우주를 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기를 사용하거나 공격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포기하지 않았으며, 무수한 갈등 끝에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특히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 분)의 캐릭터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사랑의 힘을 상징합니다. 그가 말하는 “친절이야말로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라는 메시지는, 이 영화의 철학적 핵심이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혼란스럽고 유쾌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멀티버스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수많은 선택과 갈등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이며, ‘우리는 모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서사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어떤 정체성의 혼란 속에 있다면, 이 영화는 다정하고도 강하게 이렇게 속삭일 것입니다. “지금 이 모습도 충분히 괜찮아.” 그 메시지야말로,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진짜 멀티버스의 힘 아닐까요?